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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김향주] 한국교회의 이단 유감
글쓴이 관리자 작성일 2018-09-19 조회수 970

                 

한국교회의 이단 유감

 

김향주

 

  

한국 교회 2016년 각 교단의 총회가 끝나고 새로운 회기가 시작되고 있다. 그런데 한국의 어떤 대 교단 내에서 이단을 해제하느냐? 용서하느냐? 사면이냐? 아니면 같은 형제자매로 받아들이느냐? 등의 논란이 여러 매스컴을 통해 발표된 후 “사면 선포”를 했다가 다시 철회하는 일이 벌어졌다. 동시에 일부 다른 교단 내에서도 의제가 올라와 이단 시비가 계속되고 있다.

9월 12일 발표된 사면 이유는 “사도신경”을 고백하고 그 외의 자신이 행한 잘못을 뉘우치고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므로 당연히 사면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당연한 말이다. 그런데 1주일이 지난 후 갑자가 사면 취소를 결심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놀라지 아니할 수가 없다. 교리적인 문제에 해당되는 중대한 사항을 너무 쉽게 번복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압박에 못 이겨 사면을 취소” 라는 방송 문구를 보고 의아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단 정죄는 역사 교회가 고백한 “정통주의 신앙 고백”에 의해 규정하는 것이 2천년 교회사의 흐름이기 때문에 어떤 교회의 정치적 입장, 개인의 학적 표출, 또는 세계 정통 노선에서 벗어난 일부의 사람들이 모인 사사로운 집단에 의해 이단을 규정하고, 사면하고, 또한 해제하는 일을 행하는 것을 교회사는 허용하지 않고 있다. 더욱이 어떤 압박인지 모르지만 압박에 못 이겨 라는 언론에 보도된 글자는 독자들로 하여금 의아심을 일으키지 아니할 수가 없다. 이단의 규정과 사면은 반드시 역사적 신앙 고백에 의해 규정되어져야 할 일이지 어떤 힘의 압박이나 세력 있는 집단의 영역을 떠나 규정되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중세시대를 거치면서 7천만 명에 가까운 신앙인들이 잘못된 성경 교리를 주장하는 로마 카톨릭에 의해 순교의 제물이 되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역사교회가 고백한 신앙 고백을 떠나 세력 있는 교회의 한 단체가 모 인사를 이단으로 규정한 후 한국교회 모두가 그를 이단이라고 규정했다고 해서 그가 이단이 되는 것이 아니다. 이단의 규정은 역사교회의 신앙 고백으로 돌아가 정해져야 되기 때문이다. 꼭 질문하고 싶은 것은 “이단 규정에 있어 한국교회가 정말 역사적 신앙고백에 충실했느냐?” 이다. 역사적 신앙고백을 기준하여 볼 때 여호와 증인, 통일교, 전도관, 신천지, 로마 카톨릭, WCC, 등은 분명히 잘못된 교리를 가지고 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25장 교회론에 보면 교황은 적그리스도라고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도 한국교회에서 일부 교단들이 로마카톨릭과 직제일치운동을 하고 있었으니 이는 자체모순이 아닐 수 없다.

종교개혁 이후 17세기 이성주의 철학자들과, 18세기 계몽주의 철학자들과, 19세기 자연주의 철학자들로 말미암아 20세기 신학은 난장판 신학이 되어 정통주의 개념조차 이해할 수 없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그렇다면 신앙고백주의 입장에서 볼 때 20세기 자유주의 신학은 소위 한국에서 이단으로 정죄된 일부 인사들보다 더 이단에 속하는 교리를 주장하고 있다. 신정통주의 신학이후 탈 성경 무교리주의 신학을 말해도 이제는 한국교회 안에서 신학이란 이름으로 논설을 발표하면 이단으로 정죄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이것이 20세기 이후 한국교회의 자체모순이다. 즉 WCC, 사회복음주의(Missio dei) 선교, 해방신학, 그리고 예수님에 관한 실용주의 신학을 말해도 이단으로 정죄되지 않고 있다. 이것이 모순이란 의미이다.

위에 열거한 신학들을 깊이 따져보면 고대 신조들과 종교개혁 신조들과는 너무나 큰 차이가 난다. 이들의 신학을 근본적으로 따져 보면 예수님의 본체와 3위1체론에 관한 신앙고백이 전여 결여되어 있다. 그리고 종말론에 있어 예수님의 재림과 하늘나라에 대한 신앙고백도 결여되어 있다. 즉 역사적 신앙고백을 부정하는 신학이다.

이단을 규정하는 역사적 신앙고백은 사도신조를 중심으로 하여 5세기까지의 5대 고대 신조들과 종교개혁으로 들어와 제네바 교리서, 불란서 신앙고백서, 스코틀랜드 신앙고백서, 벨직 신앙고백서, 하이델베르그 교리문답, 제1 제2 스위스 신앙고백서(First and Second Helvetic Confession), 도르트 신조, 그리고 위의 신앙고백서들을 총괄한 웨스트민스터(Westminster) 신앙고백서와 소교리 문답, 대교리 문답, 웨스트민스터 정치모범, 그리고 웨스트민스터 예배모범 등이다. 세부적으로 들어가서 생각하면 우선 기본적 교리를 잠시 뒤로한다 해도 정치 모범이나 예배모범의 규정에 어긋난 형태가 오늘날 우리 한국교회 내에서 너무나 많이 일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기본적 교리로 들어가 이단을 어떻게 규정하느냐? 의 역사는 이미 신앙고백을 통해 명백하게 나타나 있다.

그 내용은 (1) 기독론에서 예수님의 2성(性) 1인격(人格)을 부정하는 경우, (2) 3위1체론에서 유일하신 한분의 하나님과 3위(位)를 부정하는 경우, (3) 종말론에 있어 시한부적 종말론을 통해 예수님의 재림 날짜를 예측하는 경우, (4) 구원론에 있어 구속에 관한 하나님 아버지의 계획, 예수님의 구속사역의 완성, 그리고 성령님의 구속 적용사역을 부정하는 경우 (4) 교회론에 있어 무교회주의를 강조하는 경우 등의 순서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이단의 출몰은 초대교회로부터 나타났다가 교회를 어지럽히고 사라지곤 하였다.

사도들이 하늘나라로 떠나간 후 각 지역에서 나타난 이단들의 형태는 여러 가지의 교리적 혼란을 교회에서 일으키고 있었다.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하는 에비온파(Ebionites), 필로(Philo)의 뒤를 이어 유대주의와 헬라 이방사상을 기독교에 접목시키려는 엘 케사이파(El Kesaites), 1세기부터 물질세계와 영계를 분리하는 이원론(二元論), 하나님을 유출설로 주장하여 지속적으로 교회를 괴롭혀 온 영지주의 즉 그노시스파(Gnosticism, γνώσίς), 물질세계를 죄악시하는 말시온파(Marcionism), 삼위일체를 반대하는 모나키안 파(Monarchianism), 성령시대의 종말론을 강조하는 몬타너스 파(Montanus) 등으로 인하여 교회는 갈수록 교리적 혼동의 시대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이에 교회는 성경에 합당한 신조를 작성할 필요를 느끼게 되었다. 심지어 성경의 정경이 정해지지 못하여 300여년 간이나 인준되지 아니한 성경들을 유통하여 읽게 되었다. 이후 성경의 편집과 때를 같이 하여 사도신조가 정해졌다. 기독론 중심의 사도신조는 초대 교회 가장 큰 이슈였던 “예수님이 어떤 분이냐?”에 기초하여 구성된 것이다. 이 사도신조는 고대신조들의 기초가 되었다. 2세기에 만들어져 8세기에 완성된 것이지만 니케아 신조, 콘스탄티노풀 신조, 칼케돈 신조, 그리고 아타나시우스(퀴쿰케) 신조의 기초가 된 것이다.

성경의 정경이 정해지지 않고 교리적 정립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의 교회는 자연히 교리적 논쟁의 회오리 속으로 빠져 들 수밖에 없다. 처음 시작된 교리적 논쟁은 기독론이었다. 그러나 이 기독론은 삼위일체론과 연관되어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 예수님의 2성 1인격의 교리는 3위1체론과 연관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하여 고대신조를 총 정리한 아타나시우스 신조 44개조가 형성되었다. 44조를 명시하면 기독론과 3위1체론에 해당된 이단을 가려내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3위1체에 있어 삼신론, 양태론,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월경 잉태론 등이 아닌 3위의 유일하신 하나님과 성령에 의한 잉태론을 구체적으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라틴어에서 번역한 것이므로 우리말의 어휘가 이해되지 않은 부분에 대해 오해의 소지가 없기를 바란다.

1. 누구든지 구원을 받고자 하는 사람은 모든 것 이전에 먼저 이 신앙을 소유해야 한다.

2. 누구든지 이 신앙을 완전하고 순결하게 지키지 아니하면 틀림없이 영원한 멸망을 받을 것이다.

3. 이 신앙이란 다음의 것들이다. 3위 자체가 일체이고 1체가 3위이신 유일하신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4. 이 삼위는 혼합한 것도 아니고 그 본질을 나눈 것도 아니다.

5. 왜냐하면 아버지의 한 인격(위)과 아들의 다른 인격(위)과 또한 성령의 또 다른 인격(위)이 계시기 때문이다.

6. 그러나 성부, 성자, 성령의 신격은 모두가 다 하나요 그 영광도 동일하며 그 위엄도 함께 영원한 것이다.

7.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그 자체로 존재한다.

8. 성부께서 창조함 받지 않으신 것 같이 성자도 창조함 받지 않으셨으며 성령도 창조함 받지 않으셨다.

9. (우리가) 성부를 다 이해할 수 없는 분 같이 성자도 다 이해할 수 없는 분이시며 성령도 다 이해할 수 없는 분이시다.

10. 성부께서 영원하신 것같이 성자도 영원하시며 성령도 영원하시다.

11.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세 분의 영원한 분들이 아니며 한분의 영원한 분이시다.

12. 창조되지도 않았고 우리의 이해를 초월한 세 하나님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되지도 않고 인간의 이해를 초월한 단 한 분의 하나님만이 계실 뿐이다.

13. 성부께서 전능하심같이 성자와 성령도 전능하시다.

14. 그러나 세 하나님의 전능자가 계신 것이 아니요 오직 한 하나님의 전능자가 계실 뿐이다.

15. 성부가 하나님이듯이 성자도 성령도 하나님이시다.

16.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 하나님에 계신 것이 아니라 한 하나님만이 계실 뿐이다.

17. 성부께서 주님이시듯이 성자도 성령도 주님이시다.

18.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이 세분의 주님이 아니라 한 분의 주님이실 뿐이다.

19. 우리는 이 각각의 3위께서 그 스스로 하나님이요 주님이시라는 사실을 기독교의 진리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20. 따라서 세 하나님이 계시며 세분 주님이 계신다는 말은 참 기독교인으로서 금한다.

21. 성부는 그 무엇으로부터 만들어지지 않으셨고 곧 창조함 받지도 않으시고 나지도 않으셨다.

22. 성자는 성부로부터만 나오시며 지음을 받았거나 창조되신 것이 아니다.

23. 성령은 성부와 성자로부터 보냄을 받았으나 지음을 받았거나 창조되었거나 발생된 분이 아니고 나오신 것이다.

24. 따라서 세분 성부가 아닌 한분 성부, 세분 성자가 아닌 한분 성자, 세분 성령이 아닌 한분 성령만이 계실 뿐이다.

25. 이 삼위에 있어 그 어느 한 위가 다른 한 위에 앞서거나 뒤에 존재하신 것이 아니며 어느 한 위가 다른 위보다 크거나 작을 수도 없다.

26. 오직 3위가 함께 영원하며 동등한 것이다.

27. 따라서 앞에서 말 한대로, 이 모든 것에서 3위가 1체이시며 일체가 3위인 하나님께서 경배를 받으셔야 할 것이다.

28. 그러므로 구원을 얻으려는 자는 3위1체에 관하여 이와 같이 믿지 아니하면 안 될 것이다.

29. 동시에 영원한 구원을 얻는 데에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에 대하여 올바로 믿어야 한다.

30. 올바른 믿음이란 하나님의 아들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인간이라는 사실을 믿고 고백하는 것이다.

31. 그는 성부의 본질로부터 나신 신이시며 이 세상이 생기기 전에 나신 분이시오 동시에 인간으로서는 그의 어머니의 본질로부터 이 세상에 나오신 분이시다.

32. 완전한 하나님이시오 또한 완전한 인간으로서 이성 있는 영과 인간의 육신으로 생존하고 계셨다.

33. 신성으로서는 성부와 동등하나 그의 인성으로서는 성부보다 낮은 분이시다.

34. 비록 그는 하나님이시며 인간이 되신 분이시지만 둘이 아니요 한 분 그리스도이실 뿐이시다.

35. 하나 됨에 있어서는 그의 신성이 육신으로 전환된 것이 아니라(육신화[肉身化] 함으로서가 아니며) 인간의 몸을 취한 (그의 인성을 신성 안에 받아들임으로서) 하나님이 되시는 분이시다.

36. 온전히 하나인데 그 본질이 혼합된 분이 아니라 품격의 통일성으로 하나 되신 분이시다.

37. 한 인간이 영혼과 육신을 가졌듯이 한분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이시오 동시에 인간이 되신다.

38. 그 분은 우리를 위해 고난을 받으시고 음부에 내려 가셨다가 3일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나셨다.

39. 그분은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곧 성부의 오른 편에 앉아 계시며

40. 거기로부터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실 것이다.

41. 그가 오실 때에 모든 사람들은 육체로 부활할 것이며

42. 자신들의 행위에 따라 심판을 받을 것이다.

43. 그리고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영생으로 나아가고 악을 행한 자는 영원한 불에 들어갈 것이다.

44. 이것이 교회의 참 신앙이며 이를 신실하게 믿지 아니하는 자는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아멘.

 

문제는 한국교회에서 이단을 규정하는데 사도 신조를 위시하여 위의 고대 신조를 총괄한 44개 신조와 종교개혁 신조를 총괄한 웨스트민스터 신조에 의해 판단되고 있느냐? 이다. 또한 중요한 문제는 역사적 신앙고백을 교단 신학으로 신봉하는 교단들이 중심이 되어 교단의 대표적인 인물들과 각 신학교 교수들은 물론 유능한 목회자들을 모아 역사적 신앙 고백에 의해 이단을 규정했느냐? 이다. 그것은 역사 교회가 신조를 정하거나 이단을 규정할 때 그러한 절차를 밟아왔기 때문이다.

사도신조는 200년경부터 세례를 행할 때 문답용으로 사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단을 물리치고 잘못된 교리를 가르치는 일을 배격하는데 사용하였다. 이러한 사도신조는 8세기 중반에 들어와 우리가 사용하는 것과 동일한 것으로 확정되었다. 기독론으로부터 시발된 니케아 신조는 325년 5월 로마 황제에 의해 각 지역으로부터 300여명이나 되는 감독들이 모여 교리적 논쟁을 통하여 이루어낸 결과이다. 그러나 이러한 교리적 논쟁은 단기간에 그리고 단순한 결정을 내림으로 성립된 것이 아니다. 기독론 논쟁은 필연적으로 3위1체 논쟁으로 이어졌다. 기독론 논쟁이 시작된 이래 680년 콘스탄티노풀 회의에서 3위1체론을 포함한 칼케돈 신조가 확증을 받을 때까지 당시 세계교회는 교회의 감독들은 물론 로마 황제까지 동원되어 수차의 교리적 논쟁과 회의를 통해 신조를 결정한 것이다. 웨스트민스터 신조에 대해서도 우리가 깊이 접근해야할 관점이 있다. 웨스트민스터 신조는 단순한 한 지역의 신앙고백이 아니다.

문답형식에 있어서는 제네바 교리문답과 하이델베르그 교리문답의 유형을 참고하였으며 그 내용은 벨직 신앙고백, 스코틀랜드 신앙고백, 그리고 스위스 신앙고백을 총 집합하여 구성한 것이다. 그 신앙고백을 만들 때도 소수의 몇 사람이 모인 무명의 단체가 형성되어 회의를 행한 것이 아니다. 거의 모든 종파를 초월하여 성경대로 신앙하는 목회자, 신학 교수, 그리고 신실한 신앙을 소유하고 있는 의회의 지도자들까지 동원되어 5년 반 동안 121명의 신학에 깊은 관점을 가지고 있는 목사들을 위시하여 그 외 30명의 의회 의원들을 포함하여 평신도들까지 동원되어 영국국내 전쟁을 치르면서 생명을 건 작업을 통해 이루어낸 대작이다. 당시 참가자만 해도 151명이었으니 그 규모는 가히 짐작이 간다.

오늘의 한국교회에서 이단을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가? 이 문제에 있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두 가지의 문제점이 있다. 그리고 이 두 가지 문제점은 한국교회를 분열시키고 올바른 신앙고백을 무참히도 짓이겨 버리는 잘 못을 범하는 일과 관계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1. 하나는 이단 규정의 단체는 사설로 인정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반드시 성경을 영감 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역사적 신앙고백(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교리로 신봉하는 교단들이 연합체를 구성하여 신실한 목회자들과 개혁파 신학을 추구하는 각 신학교 교수들이 모여 이단문제를 규정해야 한다. 그리고 WCC를 추종하는 교단을 배제해야 한다. 그 이유는 명백하다. WCC에서 주장하는 원리는 신앙고백이라고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이 주장하는 내용은 하나님, 예수님, 그리고 성령에 관한 한 분야의 진술 즉 선언문(statement)으로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You are the light of the world, 1980부터 2005년까지의 선교 선언문, WCC에서 발행).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지 않고 3위1체를 거역하는 단체를 종교라는 이름으로 연합운동을 하는 적 그리스도적인 행위를 하는 자들이 어떻게 성경말씀을 신앙하고 역사적 신앙고백을 신봉하는 신실한 기독교인들을 이단인지 아닌지 평가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렇게 되면 가짜가 진짜를 판단하는 중세 교회사로 돌아가는 일을 행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사설 단체가 기독교라는 이름으로 역사적 신앙고백을 무시하고 자기들의 사적 신학의 표출을 통하여 정통주의 노선을 따르는 교회를 이단으로 정죄할 수 있는가? 가당치도 않은 일이 아닌가?

여기에서 우리가 또 다른 한 가지 깊이 있게 생각할 것이 있다. 지금 한국에서 몇몇 교단들이 WCC에 가입되어 있다. 그 교단들 가운데 상당수 목회자들과 성도들이 WCC의 신학을 알고 난후 그들이 WCC 반대운동에 적극 동참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정확한 신학적 홍보가 이루어지지 아니했다는 문제도 있지만 연합이란 미명아래 교리적 순수성을 무시했다는 측면도 간과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앞으로 이단을 규정하기 위한 여러 교단들이 참여하게 될 경우 교단적으로 WCC에 속해 있을지라도 개인적으로 WCC의 신학을 반대하는 목회자들과 성도들도 참여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2. 다음으로 신앙고백의 교리에 의해 이단을 규정해야 한다. 정통 개혁파 신학을 주장하는 한국 장로교회에서 목사 임직을 할 때 반드시 두 가지 질문을 한다. 하나는 성경을 영감 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느냐? 이다. 그리고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신조로 하느냐? 이다. 이 질문들은 아주 중대한 신앙의 노선을 점검하는 절차이다. 이 질문들에 대하여 “예” 라고 대답하고 WCC 운동이나 로마 캐톨릭과의 직제 연합운동에 가담하게 된다면 이는 하나님을 신앙하는 일에 대한 배신행위가 되는 것이다. 예수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신앙하는 성도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이단을 규정하는 신앙고백의 교리는 전문적인 교육을 통해서 인식되어 진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적 신앙고백을 교단신학으로 삼고 있는 개혁파 신학을 신봉하는 교단들이 협의하여 각 교단별로 전문적 교리를 탐구하는 자들을 대표자들로 선정하여 연합체를 형성하고 이단에 대한 심도 있는 탐구를 통해 결정해야 한다. 소수의 사설 단체에서 거론하여 이단을 규정하는 것이 용납된 한국교회가 세계 교회사를 통해 볼 때 참으로 이상한 현상이라 아니할 수가 없다. 이번 어떤 교단 총회의 결과들을 보면 작은 사설 단체에서 규정한 이단문제로 말미암아 대 교단이 어려운 입장에 처해 평지풍파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 이상한 현상이 아닌가? 이러한 회오리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한국 교회는 시급히 세계 교회사의 모범을 따라 개혁파 신학을 추구하는 교단들이 모여 교단별로 각 대표자들을 선정하여 역사적 신앙고백에 의해 이단을 규정하는 제도를 형성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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